철학은 왜 필요한가
// ORIENTATION— 만드는 사람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철학은 정답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철학을 떠올리면 오래된 책과 어려운 이름부터 생각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니체. 그들의 문장을 외우고 시대순으로 배열하는 일이 철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철학의 출발점은 지식이 아니라 멈춤에 가깝다.
누군가 “그건 당연하지”라고 말했을 때, 정말 당연한지 한 번 더 묻는 것. 모두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을 때,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하는 것.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전제로 삼았는지 돌아보는 것.
철학은 질문에 그럴듯한 답을 붙이는 기술이 아니다. 질문의 모양을 살피고, 그 질문을 가능하게 만든 가정을 드러내며, 답을 내릴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까지 묻는 일이다.
그래서 철학은 한 문장으로 고정하기 어렵다. 그래도 철학이 반복해서 다루어 온 질문은 몇 가지로 모아볼 수 있다.
- 무엇이 참인가?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무엇이 중요한가? 좋은 삶과 좋은 세계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은 같은가?
- 무엇이 실재하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물 자체인가, 해석된 모습인가?
이 질문들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 이 질문에 답하면서 살아간다. 다만 보통은 그것을 철학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
공학자는 이미 철학을 하고 있다
공학자는 현실을 바꾸는 사람이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리를 놓고, 데이터를 흐르게 하고,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그런데 현실을 바꾸려면 먼저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잘라내야 한다.
사용자는 누구인가? 문제는 무엇인가? 성공은 어떤 숫자로 표현되는가? 실패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 시스템은 누구에게 열려 있고, 누구에게 닫혀 있는가?
이 질문 중 어느 것도 컴파일러가 답해주지 않는다. 테스트가 통과했다고 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올바르게 골랐다는 보장도 없다. 서버가 안정적으로 동작한다고 해서 그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뜻도 아니다.
예를 들어 배송 경로를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자. 목표를 “가장 빠른 배송”으로 정하면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그 목표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가장 빠른 경로가 가장 안전한 경로와 다를 수 있다. 배달 노동자의 휴식 시간을 줄여서 얻은 속도일 수도 있다. 도심의 소음과 교통 부담을 외부에 떠넘긴 결과일 수도 있다.
여기서 공학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떤 알고리즘이 가장 빠른가?
철학적 질문은 그보다 앞에 온다.
빠르다는 것은 누구에게 좋은가? 우리가 최적화하지 않은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애초에 이 시스템의 목적을 그렇게 정해도 되는가?
공학자는 목적 함수를 고르는 순간 이미 가치 판단을 한다. 데이터베이스의 기본값을 정하는 순간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한다. 권한 모델을 설계하는 순간 어떤 사람을 믿고 어떤 사람을 의심할지 정한다.
공학은 가치가 끝난 뒤 시작되는 일이 아니다. 가치를 코드와 구조로 번역하는 일에 가깝다.
철학은 공학의 디버거다
좋은 디버거는 에러가 발생한 줄만 고치지 않는다. 기대한 동작이 무엇이었는지, 그 기대가 어디에서 왔는지, 테스트가 정말 올바른 행동을 검사하는지 살핀다.
철학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눈앞의 증상보다 더 깊은 층의 문제를 찾는다.
- “사용자 편의”라는 말 안에 누구의 편의가 들어 있는가
- 성공 지표가 실제 목적을 대표하고 있는가
- 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리는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 위험을 줄였다는 말이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옮겼다는 뜻은 아닌가
-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바뀌었는가
이런 질문은 배포 파이프라인을 더 빠르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대신 잘못된 것을 빠르게 배포하는 일을 막아줄 수 있다.
철학은 개발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는다. 개발의 방향과 비용을 보이게 만든다.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 문제로 삼았는지 확인하게 하고, 무엇을 측정할지 정하기 전에 측정되지 않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서양의 본질, 동양의 진리?
서양은 본질을 찾고 동양은 진리를 찾았다는 식의 구분은 매력적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거칠다. 서양 철학도 진리를 물었고, 동양 철학도 존재의 근원과 본질을 물었다.
다만 질문의 습관을 비교하는 하나의 렌즈로는 사용할 수 있다.
서양 철학은 종종 “이것의 본질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개념을 분해해 사물의 구조와 근거를 찾으려 했다. 동양 철학은 “이 세계에서 어떻게 바르게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오래 붙들곤 했다. 전자가 세계를 명료한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방향이라면, 후자는 삶의 방식과 관계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학에는 둘 다 필요하다.
시스템의 구조와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도 필요하고, 그 시스템이 어떤 삶과 관계를 만들어내는지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무엇이 작동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을 위해 작동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이 섹션에서 하려는 일
이 섹션은 철학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는 교과서가 아니다. 오래된 질문을 오늘의 공학적 상황으로 가져오는 실험이다.
AI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할 수 있는지 묻기 전에 판단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모델의 정확도를 비교하기 전에 정확하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따져볼 것이다. 자동화의 효율을 이야기하기 전에 효율의 비용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확인할 것이다.
각 글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답을 빨리 정리하는 대신, 그 질문 안에 숨어 있는 가정과 이해관계를 드러내려 한다. 결론이 있더라도 독자가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다.
공학은 세계를 바꾸는 기술이다. 철학은 무엇을 왜 바꿔야 하는지 묻는 기술이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라면, 두 기술을 모두 연습해야 한다.